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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내용
책제목도리언 그레이 초상/살로메
작성자 김**
작성일 2020/05/01
조회수 139
화가들의 자화상을 가만 들여다보면 각자의 삶의 이야기가 보이는 듯하다. 프리다 칼로를 예로 들면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이것 모두 내가 끝내 이겨내버리겠다는 굳건하면서도 엄중한 의지와 디에고 리베라를 향한 타오르는 분노 짙은 사랑의 질감이 전해진다. 고흐 또한 녹색 요정 압생트의 아슬아슬 불안하게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노란빛의 심포니가 밝음 속에 또 다른 밝음으로 요동친다.

자화상이란 참으로 그렇다. 가만 가만 나를 들여다보는 그 시간 앞에 얼마나 많은 생각이 교차될 것이며 그만큼의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감정 앞에 터질 듯 두근거리는 심장만이 존재의 에너지를 느끼게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자신의,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게 한다. 순수하고 착했던 도리언 그레이라는 청년이 영원한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린 채 한결같은 아름다운 외모 속에 살아가지만 추악하고 부패한 모습으로 자신의 초상화만 일그러지다 결국 파멸에 이르는 이야기이다.

도리언 그레이가 타락에 빠져간 중요한 전환점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추악한 본 모습을 숨기고 싶은데 자꾸 직시하게 만드는 바질을 향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때일까? 아니면 헨리경이 빌려 준 위험한 소설책 속 파리의 젊은이가 온갖 도덕에 저항해 쾌락을 좇으며 한 평생 사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까? 더 앞으로 가 사랑했던 시빌 베인의 죽음 앞에 돌이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쓰다 헨리경과 오페라 감상 후 양심의 가책이란 것도 슬픔과 연민이란 감정과 함께 사라져버렸던 때일까? 그도 아니면 이야기의 시작에서 도리언 그레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림을 완성해가는 화가 바질 홀워드로 인해 그의 친구 헨리경과 우연히 처음 만나 가벼운 산책을 하며 나누게 된 대화 때문이었을까? 물론, 모두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익스피어의 맥베스에서 홀연히 나타난 마녀들의 사악한 약속을 받아들인 것은 높이 솟아오른 맥베스의 욕망 그 자체였을 뿐이다. 그가 휘둘린 것은 마녀의 사악한 약속이 아닌 다스리지 못한 사악한 그의 욕망이었다. 마녀의 예언을 실현하기 위해 행동한 결과는 괴로움으로 괴로움은 다시 마녀를 찾아가는 엉뚱한 것을 의존하는 악순환에서 그는 파멸에 이른 것이다.

나치의 비극적인 유태인 홀로코스트가 역사적인 현실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은 그 이념을 실행해 간 많은 친위대 때문이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참고하면 권위, 주변의 태도, 관행 등에 좌우되어 자신의 결정은 유보시키고 법과 규정이 정한 것이므로 책임자가 명령한 것이므로 나는 책임이 없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옳은 결정의 근거는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 사유불능이야 말로 ‘악’의 근원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미 그의 안에서 잠재우지 못한 파멸의 싹은 꿈틀거리자마자 도리언 그레이조차 시작도 모른 체 삶의 방향성을 다른 길로 몰고 질주하다 피폐함 속으로 침몰했다. 타락해가는 초상화를 마주할 용기조차 없어 융단으로 덮고 그것도 두려워 잠긴 이층 방으로 옮겨가는 도리언 그레이의 모습을 보면서 윤동주의 자화상 시를 떠올려본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그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 전문)  

도리언 그레이에게 필요했던 건 어쩌면 우물을 마주할 용기 한 조각과 내적 성찰을 갈급할 잠시의 여유 아니었을까? 괜찮은 척, 멋있는 척 가장한 껍데기에 숨어 자신을 속이는 데 익숙해지면 돌이키기 힘들다. 사유불능의 악이 아닌 가치 있는 자기 성찰로 나의 자화상을 완성해가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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