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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내용
책제목카프카식 이별
작성자 김**
작성일 2020/07/10
조회수 74
매일 아침 새처럼 지저귄 노래 들어보세요
[서평] 김경미, <카프카식 이별>, 문학판(2020년)

시각은 빛의 반사를, 청각은 공기의 떨림을 읽어낸다. 시각은 사물에 가려지면 볼 수 없지만, 청각은 막아도, 다소 겹쳐져도 투명 레이어처럼 인지가 가능하다. 소리는 공간을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잔잔한 소리와 음악은 모든 곳의 ‘배경’이 될 수 있다.
무형의 주파수는 채널을 맞춘 사람들의 귓가에 공기의 떨림으로 증폭된다. 귓가에 담긴 그 소리는 자유롭게 떠돌며 저마다 기억의 공간에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어떤 음악은 어느 흐린 아침의 출근길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멘트는 잊고 있던 누군가를 호명하기도 한다.  
아침 9시, FM 라디오 <김미숙의 가정음악>은 한 편의 시와 그 시에 대한 해설로 오프닝이 시작된다. 전파를 타고 청취자들에게 전해졌던 매일 매일의 오프닝 시가 모여서 한 권의 시집이 되었다. 매일 아침 새처럼 지저귄 시인의 노래가 모여, 노래의 숲, 하나의 교향곡이 되었다. 바로 방송작가이자 시인인 김경미의 <카프카식 이별>이다.
출근길 라디오에서 문득 들은 좋은 구절을 검색해도 안 나오고, 다시 듣기도 되지 않아 갑갑한 마음이었는데 책으로 나왔다기에 너무 반가워 한달음에 읽었다. 시집을 읽는 동안 오래전 방송을 듣던 날의 날씨며 그날의 기분, 상황들이 눈앞에 다시 펼쳐지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매일 매일 써내려간 김경미 시인의 시는 가볍다. 숙성이 덜 된, 삶의 원형이 남아 있는, 아직 파릇한 언어들이 때론 싱그럽고, 때론 질박한 진실감을 전해준다. 물론 거기엔 글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 미성으로 전달해주는 김미숙 아나운서의 품격 있는 낭송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청취자를 염두에 두고 시를 쓴다는 것이 오히려 상징으로 뒤얽힌 난해함의 함정을 피해 담백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 시에 이어지는 시작에 대한 배경과 해설은 시에 대한 접근과 이해를 확장한다.
시인은 스스로 “시를 이렇게 설명하듯 쓰는 건 나쁜 일”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설명이 충분히 새롭고, 시적 은유를 경유하기에 최종적으로 그녀의 시작은 나쁘지 않다.

자연, 일상을 일깨우는 예민한 감각의 언어

‘날씨는 맑고 화창한 날씨만 좋은 날씨고
그렇지 않은 건 전부 나쁜 날씨라고만 알았어요’
(중략)
내 나이 몇 살에
인생이
첫발만 얹으면
알아서 꼭대기로 데려다주는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는 걸 알았었던가…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160쪽

시인은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서 반란의 계기가 되는 것이 달걀을 큰 모서리 쪽으로 깰까, 작은 모서리 쪽으로 깰까 하는 사소한 문제였음을 상기시키며, “모든 사소함을 동반하지 않는 위대함은 없다”고 말한다.시인은 작은 것을 놓치지 않는 예민한 감각으로 일상과 자연에 놓인 사소한 것들을 위대한 의미의 언어로 일깨워낸다.
한국어에서 나이는 먹는 것, 영어에선 늙는 것(old), 불어와 스페인어에선 옷이나 화분처럼 갖는(avoir, Tengo) 것이라고도, 풀 초(艹)에 새 조(鳥)가 합쳐진 글자가 담쟁이 조(蔦)이니 담쟁이는 새 같은 풀이라고 일깨워준다.
또한 눈부신 아침 햇살 속 가로등 불빛처럼 가끔 헛힘만 쓰는 날들도 있지만, 애쓰며 사는 것, 그게 사람이 인생을 대하는 최고의 예의라고 말한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사소함을 예민한 감각으로 불러 세워 새로운 의미로 깨어나게 한다. 이는 고단한 삶에 따뜻한 온기를 더하는 햇살처럼 퍼진다.

사랑과 이별을 여행한 언어

이별은 나쁜 게 아니에요
이별을 말하고 듣는 건 나쁜 게 아니에요
때론 말하는 쪽만 홀가분하고 받는 쪽만 상처라고 불공평하다지만

사랑도 다른 사람 다 두고
하필 나를, 하필 너를 사랑하는 불공평에서 시작되죠

사랑엔 처음부터 이별의 고통의 몫도
들어 있어요 아예 처음부터
「카프카식 이별 2」, 266쪽

시인은 기다리지 말아야 할 시간의 치수를 기다리고, 사랑을 ‘마음을 물어뜯는 맹수’라고 여기며 도망 다녔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도망만 다니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사랑은 한 그루 나무에 얼마나 많은 꽃잎들 달렸는지 얼마나 많은 초록잎이 달렸는지를 세는 일처럼 때로 어이없는 일, 불가능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더 떨어질 바닥이 없는 낙엽처럼 이별, 잊혀짐은 더 바닥날 감정이 없기에 축복일 수도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영원히 잊히지 않는,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시인은 이를 “그리움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지만, 그리움 아니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행복을 향해 달려가는 언어

시간 낭비하기
-집에서 정거장까지/장미꽃 좀 더 많은 길로 빙 돌아서 다니기
(중략)
가벼워지기
-육월의 기역 받침 떨어내고 가벼운 유월 되듯이/너무 많은 결심이나 각오의 추 매달지 않기  
 「유월의 결심들」 중에서, 232-233쪽

시인은 봄에 꽃들은 세 번씩 핀다고 한다. 필 때 한 번, 흩날릴 때 한 번, 떨어져서 한 번. 나뭇가지에서 한 번, 허공에서 한 번, 바닥에서 밑바닥에서도 한 번 더. 그 중에서 떨어져서 길을 물들이는 바닥의 꽃들이 제일 아름답고 힘이 되는 날도 있다고 말한다. 이제 꽃이 졌다고, 전성기를 지났다며 의기소침 하는 사람들을 다독이고 위로한다.  
하늘의 맑은 구름 하나만으로 삶은 완벽하게 아름답고 눈부실 수 있다. 헤르만 헤세는 ‘나보다 더 구름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보라!’고 했다지만, 시인은 7월 7일의 한국 구름을 봤다면 헤세도 한국인 뒤로 한 발짝 물러났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리고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넓이에는 자주 감탄하지만 다른 집 아파트 평수에는 관심이 없는” 친구에게 ‘그녀 만세’를 외친다.
김경미 시인의 언어는 아침을 여는 사람들에게 행복의 오프닝이 된다. “받지 않아야 할 상처에 지나치게 오래 자신을 방치하지 말 것, 새와 나비처럼 자유롭고 독자적이고 독립적일 것, 고유할 것, 고유하되 타인의 손, 끝까지 놓지 말 것, 매사 순한 마음이 불러오는 순조로움을 믿을 것” 등 시인의 ‘나를 위한 시’는 모든 청취자, 독자를 위한 행복의 오프닝이 된다.

“우리는 눈을 통해 세상으로 나가고, 세상은 귀를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고 했다. 음소거 상태로 글을 읽는 것과 소리를 통해 듣는 것은 분명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김경미의 시는 귀를 통해 들어온 소리가 활자의 옷을 입고, 나비처럼 더 자유롭게 춤춘다.
주파수를 탄 시의 언어에는 많은 사람들의 아침의 순간, 순간들이 묻어 있다. 누군가에겐 길 위에 흘러나오는 위로, 누군가에겐 삶의 잠언, 또 누군가에겐 깨달음을 위한 화두가 되기에 충분하다.
소리는 공기의 떨림이고, 시는 마음의 떨림이다. 소리로 빚어진 김경미의 시는 공기의 떨림이 마음의 떨림으로 아득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가는 아름다운 무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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