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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불안의 서
작성자 김**
작성일 2020/08/07
조회수 162
감정과 자연의 위대한 번역가, 페소아를 아시나요?
[서평]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배수아 옮김, 봄날의책(2014년)

“우리는 두 개의 아득한 심연입니다. 하늘을 응시하는 우물입니다.” -41p

포르투갈이 낳은 세계적인 대문호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의 800페이지가 넘는 <불안의 서>는 ‘두 개의 아득한 심연’에 대한 주석이다. 하나는 우물로 대표되는 내면의 불안과 나침반의 바늘처럼 끊임없이 떨고 있는 예민한 감수성의 세계이며, 다른 하나는 하늘로 대표되는 상상, 환상, 꿈의 세계이다.
지상의 위, 아래에 있는 하늘과 우물은 서로를 응시하는데, 하늘 곁의 상상은 깊은 우물 같은 내면을 확장하고, 확장된 내면은 우주처럼 시간과 세계를 확장한다. 페소아의 <불안의 서>를 접한 독자라면 누구나 이 확장의 경험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

페소아는 왜 불안한가?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때리고 있는 것 같다. -158p

페소아는 다섯 살 무렵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는다. 남아공의 포르투갈 영사와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남아공 더반에서 학창시절을 보낸다. 1905년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돌아와 열네 번의 이사를 하고, 스물 한 곳의 직장을 전전하며 글을 쓴다.
고독이 자신을 파괴하더라도, 사교의 압박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페소아는 스스로 가족이 없는 것을, 누군가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없는 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누군가를 사랑해본 일이 없다고, 스스로 가장 사랑한 것은 자기 자신의 감각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가족과 떨어져 홀로 살아서일까. 페소아는 사랑받는 것, 타인의 감성을 짐처럼 받아주는 것을 피곤해한다. 운명이 자신에게 던져준 회계장부와 같은 이성, 예민한 감수성, 꿈꾸는 능력에 만족하며 그 꿈의 내용을 받아 적는다. 뭔가를 느껴야 한다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불안하고 고독한 삶의 언덕을 오른다.  

왜 글쓰기에 천착하는가?

“나는 그것을 글로 씀으로써 그것을 치유한다. 그렇다. 실제로 깊은 음울은, 단순한 감정의 차원이 아니라 지성의 표현으로서의 음울이라면, 그것에 언어의 옷을 입힌다는 아이러니한 치료제가 늘 있기 마련이다.” -255p

“나는 포르투갈어로 쓰지 않는다. 나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 쓴다.” -733p

“정신의 생애를 세밀하게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 외에 내가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기쁨이 또 뭐가 있단 말인가?” -782p

페소아에게 글쓰기는 끊임없이 엄습하는 불안, 고독, 피곤, 음울의 감정에 언어의 옷을 입히는 과정이다. 삶의 치료제로서 글쓰기는 그래서 단순한 기호로서의 언어가 아닌, 그의 온 존재를 갈아 넣어야 하는 실존의 과정이다.
페소아는 자신의 정신 생애를 세밀히 기록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으며, 또한 욕망한다. 언젠가 자신이 살아 있지 않은 미래에, 자신의 글이 칭송 받고 길이 읽히게 되길 ‘서글픈 유쾌함’으로 떠올린다. 그런 상상은 유쾌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서글펐을 것이다. 페소아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죽음을 맞이할 때, 그가 출판된 책은 <메시지> 단 한 권뿐이었으니.

자연과 감정의 위대한 번역가

“들판은 그것이 언어로 묘사될 때 실제보다 더욱 녹색을 띤다.” -64p

“구름…(중략) 나는 나 자신과 자신 아닌 것 사이의 공간이다. 내가 꿈꾸는 것과 삶이 나로 형성해놓은 것 사이의 공간이다. 아무 것도 아닌 사물 사이의 관념적이고 육체적인 평균값이다. (중략) 하늘과 대지 사이에 놓인 파괴된 통로다. (중략) 지상의 소란으로부터 멀리 떨어졌으나 아직 천상의 고요를 얻지는 못한 채 그 둘로부터 이탈해버린 중간계의 허구.” -361, 362p

“아마도 언젠가 어떤 사람들은 이해할 것이다. 내가 다른 인간들과는 달리 자연으로부터 번역의 의무를 부여받았고, 그에 따라 우리 세기의 일부분을 번역해온 것이라고.” -338p

페소아가 아니라면, 누가 구름의 언어를 이렇게 멋지게 인간에게 번역해줄 수 있을까. 누가 비를 하늘이 대지를 두드리는 드럼, 바이올린, 하프 소리로, 비둘기, 독수리의 날갯짓으로 읽어줄까. 누가 줄곧 비 내리던 절망의 감정, 그 깊은 곳에 숨겨둔 푸른빛의 희망을 번역해줄까.
페소아는 감정과 자연의 위대한 번역가다. 그의 언어로 번역된 인간의 감정과 자연의 소리는 암울하고 칙칙한 현실을 견디는 이들에게 뜻밖의 위안을 준다.

페소아의 이명(異名) 혹은 페르소나

“나는 무조건 나이고 싶다.” -46p

“우리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다층적인 오해로 이루어졌는가!” -551p

<불안의 서>의 화자이자 작가는 ‘소아레스’다. 페소아는 소아레스 이외에도 70여 개의 이명(異名)으로 각기 다른 개성, 각기 다른 스타일의 자신을 연출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단 한 번도 나는 연기하지 않았다. 나는 연기되는 역할 그 자체였다. 나는 배우가 아니었다. 배우의 연기였다”고. 페르소나(가면)가 얼굴에 붙어버린 페소아지만, 그는 늘 자아에서 한 걸음 떨어져 삶을 미학적으로 관조하는 지점에 선다. 우주만큼 많은 자아를 만들어 모든 것을 느끼고, 모든 것을 쓰고자 한다.

누군가에 의해 아직 충분히 번역되지 않은 페소아는 그저 텍스트로 존재한다. 페소아는 그저 읽히기 위해 거기 있는 작가다. ‘페소아’라는 하늘을 응시하는 우물을 들여다보기 위해 우리는 허리를 굽히고 몸을 숙여야 한다.

“나는 내 안의 수심을 재고 있다가 측량기를 떨어뜨려버렸다. 그래서 매일매일 나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깊은가 깊지 않은가. 이제 내가 가진 측량기는 내 시선뿐이다.” -343p

“내가 한 모든 일, 내가 느낀 모든 것, 내가 산 모든 삶은, 어느 도시의 어느 거리를 매일 지나다니던 행인 하나가 줄어든 사건으로 요약되고 말 것이다.” -788p

페소아를 읽고 나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페소아’라는 배가 지나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그리움이 그 배 뒤에 긴 너울처럼 남아 있음을. 오직 철저한 시선 하나로 내 안의 수심을 재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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