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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팬데믹 패닉
작성자 김**
작성일 2020/08/24
조회수 188
적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서평] 슬라보예 지젝, <팬데믹 패닉>, 강우성 옮김, 봄날의책(2020년)

코로나19가 우리 삶의 기반 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마스크는 얼굴의 일부가 된지 오래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모든 관계가 지향해야 할 금과옥조가 되었다. 버스, 지하철에서 마스크 때문에 벌어지던 실랑이는 이제 철없던 시절의 해프닝쯤으로 여겨질 정도다.  
마주해야 하는 현실은 더 엄중하다. 관광, 숙박, 음식업, 교육서비스업, 공연계 등의 매출 감소는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늘 그렇듯, 감염병의 가장 큰 피해는 비정규직, 계약직 등 취약계층에게 먼저, 그리고 치명적으로 들이닥친다.
세계화, 신자유주의의 ‘같은 배’를 탔던 전 세계는 지금껏 구축한 글로벌 공급망의 초고속 네트워크 덕분에 동시다발적인 감염병의 열병을 함께 겪어내야 하는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그럼에도 각국은 연대와 협력보다는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수행중이며, 그 결과는 향후 세계 질서 재편의 중대한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우리 시대 가장 논쟁적이고, 가장 위험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코로나바이러스가 훑고 가는 세계의 풍경을 어떻게 바라보며, 또 어떤 담론과 대안을 내놓고 있을까. 지젝은 바이러스가 인류의 삶을 뒤흔드는 시간 속에서 새로운 정치적 변화의 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적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 창궐을 불러온 시스템이다

“바이러스는 계획과 전략을 갖추고 우리를 무찌르려는 적이 아니라, 어리석게 자가증식하는 한갓 메커니즘일 뿐이다. -130p

한 사회가 트라우마에 해당하는 어떤 참사를 당했을 때 언제나 부인,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발생했을 때는 별 것 아닐 거야 부인하다가, 최초 발생지인 중국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분노하고, 점차 그래도 우리나라는 피해를 최소화할 것이라며 타협하고, 다시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우울해하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이 된 뉴노멀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신종 바이러스가 몰고 온 의료, 경제, 심리 위기라는 세 겹의 위기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겪어낸다.
세계 각국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저마다 방역에 열을 올린다. 지젝은 자연발생적이고 우발적인 바이러스가 적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바이러스의 발생과 확산을 불러온 환경 파괴적인 자본주의 시장메커니즘과 차별과 배제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질서의 운영시스템이 문제라는 것이다.
지젝은 생태주의적 재난의 새로운 단계를 경고하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고 영위해온 신자유주의 전 지구적 네트워크 시스템의 자기모순이 확연하게 드러난 정치적 사건으로 규정한다.
7,500만에서 2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이 중세를 끝내고 근세에 접어들게 했듯이, 코로나바이러스가 각자도생과 블록화를 종식하고 전 지구적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초국가적 정치 혁명의 계기를 마련해주길 기대한다.
지젝은 여러 차례 조롱거리가 되었음에도, 이 초국가적 정치 혁명의 이름을 과감하게도 ‘공산주의’라고 명명한다.

전 지구적 통합 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

“옛말에 이르듯, 위기의 시절에는 우리 모두가 사회주의자다.” -116p

감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퍼지는 상황에서 시장 메커니즘의 자정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시장의 기능은 역부족이다. 우리 대다수는 국가의 강력한 개입과 재난 극복 로드맵을 기대한다. 그것은 얼핏 전체주의적이고, 공산주의적으로 비칠 수 있다.
지금껏 금과옥조로 여겼던 자유와 민주의 가치는 위기 상황에서 조금은 제한될 수도 있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뤄지는 사이, 국가는 정치적 통제시스템을 극대화하고, 경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재난지원금을 뿌리며, 기본소득제를 기존사실화 한다.
지젝은 이런 경제 보상 차원의 단발마적인 대응에도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 단순히 감염병만 막겠다는 안일한 땜질 대응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보의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고,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중국의 전체주의, 국가자본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를 배격하고, 또 사회적 차별의 분리선을 따라 철저히 차별적인 의료 혜택이 주어지는 미국식 자유주의 또한 거부한다.
지젝은 공공의료를 전 지구적 통합 관리시스템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빌 게이츠도 강조한 ‘전 지구적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선진국에서 퇴치된다 해도 발전도상국에 무방비로 퍼지면 후속 파고가 다시 덮칠 것이기 때문이다.

뭐라 부를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질서를 뭐라고 부를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공산주의라고 부르든,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말대로 바이러스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조직된 면역체계라는 뜻으로 공면역주의(Co-immunism)라고 부르든 핵심은 마찬가지다.” -172p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는 AI는 산업전반에 더 깊숙이 파고들 것이다. 비대면, 언택트(untact)문화는 새로운 소비패턴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지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노동을 갈아 넣어야’ 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부유층은 섬 하나를 매입해 자가격리를 향락으로 누리겠지만, 빈곤층은 어쩔 수 없이 가파른 현실과 비대면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대면해야 하는 것이다.
같은 배를 타고 있지만, 누구는 갑판의 여유를 누리고, 누구는 지하 기관실에서 엔진에 기름칠을 해야 하는 이런 불평등의 구조를 타파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젝은 역설한다. 마스크, 진단키트 등의 의료장비부터 곡물 생산과 실업 등 생명과 생존에 관련한 물품의 생산과 공급을 시장 메커니즘에 의탁하지 않고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조절,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시스템을 뭐라 부를지는 중요하지 않다.

바이러스는 이데올로기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다. 그러나 바이러스 감염의 경로와 정도와 속도, 치료의 접근성과 효율성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철저하게 차별의 분리선을 따라 갈라진다.
지젝은 사회적 차별의 분리선을 없애지 않고 진정한 방역에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적 차별은 글로벌 무한 경쟁이 만든 괴물이다.
지젝은 전체주의적 양상을 향하는 현 시국에 “복종하되 사유하고, 생각의 자유를 지켜라!” 칸트의 가르침을 따르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들려주는 지젝의 다음 경고는 전 인류가 새겨들을 만하다.

“자연이 바이러스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메시지를 돌려주는 일이란 사실이다. 그 메시지는 이렇다. 네가 나에게 했던 짓을 내가 지금 너에게 하고 있다.” -1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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