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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내용
책제목떨림과 울림
작성자 김**
작성일 2020/10/02
조회수 70
과학의 언어로 읽어낸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서평] 김상욱, <떨림과 울림>, 동아시아(2018년)

“우주의 본질을 보려면 인간의 상식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래서 물리는 처음부터 인간을 배제한다.” -7p

철저하게 인간을 배제하는 물리는 냉철한 얼굴을 지녔다. 그런 의미에서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을 떠올리게 한다. 하늘과 땅은 만물을 생육하지만,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는다. 또한 결코 어떤 의도를 갖고 만물을 대하지도 않는다. 만물을 그저 풀로 엮은 강아지 대하듯(以萬物爲芻狗) 할 뿐이다.
인간의 정리를 떠난 그 객관성과 냉철함은 인간이면 갖기 쉬운 상식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게 한다. 인간이 배제된 물리의 세계는 때로 무미건조하지만, 그 무미건조함은 한없이 투명하고 오직 물질적 증거에만 기반하기에 온갖 욕망과 권력이 왜곡하기 쉬운 세계의 현상을 더 명쾌하게 해석하는 힘이 있다.
물리학자 김상욱은 <떨림과 울림>을 통해 과학의 언어로 세계를 읽는 법을 소개한다. 물리학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를 시도한다. 물리학계에서는 이런 시도가 그를 이단아처럼 보이게 할지 몰라도, 어려운 물리학을 힘겹게 바라봐야 하는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난해한 물리를 쉽게 풀어 설명하려는 그의 시도가 신선하고 고맙게까지 여겨진다.
김상욱의 삐딱한 글쓰기는 물리학에 대한 그의 학문적 역량이 울림을 만들 정도로 드높고, 대중에 다가가려는 진성성이 충분히 깊음을 증명한다.

빅뱅, 그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삐딱함

“아무튼 세상의 물질은 알 수 없는 비대칭에서 생겨났다. 적절한 크기의 삐딱함이 세상을 만든 것이다.”  -43p

텅빈 시공간의 무에서 어떻게 유가 탄생했는가를 설명하는데도 비대칭의 삐딱함이 필요하다. 텅빈 시공간의 무를 확대하면 수많은 1과 –1이 순간적으로 생겼다가 다시 합져지며 0이 되는 과정을 반복한다. 쌍생성이라 불리는 이 물질과 반물질의 생성과 소멸의 균형이 10억 분의 1의 차이를 보이며 물질이 반물질보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 많이 생겨나게 된다. 이 알 수 없는 비대칭, 삐딱함이 무에서 유로, 물질과 세계를 창조해낸다.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한 직후, 우주는 너무 뜨거워 그 무엇도 존재할 수 없었다. 우주가 팽창하며 온도가 낮아지자 물이 얼음이 되듯 물질이 등장했다.
빅뱅 이후 38만 년이 지났을 때 수소, 헬륨과 같은 원자가, 그리고 빛이 생겨났다. 이 빛은 지금까지 우리 주위를 떠돌고 있으니, 바로 우주배경복사다. 그 빛을 통해 빅뱅 이후 38만 년 전의 초기 우주에 관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하니, 빛은 우주가 자신의 모습을 담아 놓은 거울이고, 우주의 미스테리를 푸는 열쇠다. 빛은 그야말로 과학의 빛이자 아직 남은 희망인 셈이다.

빛은 파동이면서 입자다

물리학의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인 빛은 그것이 파동인지 입자인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미시 세계를 연구하는 양자역학 학자들은 “빛의 소립자들은 여러 상태가 확률적으로 겹쳐 있는 파동함수로 존재하고 있다가, 관찰자가 측정을 시작하면 파동함수의 붕괴가 일어나면서 하나의 상태로 결정된다”는 코펜하겐 해석을 내놓았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았으면서 동시에 죽을 수 없지만, 빛은 파동이지만 당구공처럼 단단한 입자로서의 성질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양자역학의 해석을 소개하면서도 우주는 결국 떨림이라고 말한다. 물질과 파동의 경계가 허물어진 우주의 다양한 양상이 존재하는데, 파동은 물질이 움직이는 방식의 하나가 아니라 물질 그 자체의 본질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물질의 궁극을 탐구하면 세상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작은 끈으로 되어 있다는 초끈이론과 만난다고 소개한다. 우주는 초끈이라는 현의 오케스트라이고, 그 진동이 물질을 만들고, 그 물질은 다시 진동하여 소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힌두교에서 신을 부를 때, 옴(aum)이라는 단진동의 소리를 내듯이 소리의 진동은 다시 신으로, 우주로 돌아간다는 저자의 해석은 매우 흥미롭다.

‘대칭’의 아름다움

F=ma (F: 힘, m: 질량, a: 가속도)
E=mc2 (E: 에너지, m: 질량, c: 빛의 속도)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만든 이런 방정식에 물리학자들은 희열을 느낀다고 한다. 뒤죽박죽 복잡하게 뒤엉킨 현상을 너무도 깔끔하고 명확하게 정리해내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이런 이론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지닌 간결함과 대칭에서 온다고 말한다. 사실 E=mc2, 이런 공식이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한지 실감나게 다가오진 않지만, 에너지가 질량이고, 질량이 곧 에너지다라는 발견은 신박해 보인다.
저자는 20세기 초 에너지 목록에 추가된 ‘질량’이 에너지계의 아이돌이고, 가장 최근 에너지의 목록에 추가된 ‘암흑에너지’는 막 떠오르는 유망주쯤 된다고 말한다. 피터 힉스가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입자가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도 아인슈타인의 ‘E=mc2’을 발전시킨 결과가 아닐까.
질량 자체가 물질 안에 저홀로 들어 있는 속성이 아니라 힉스입자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기는 효과라는 설명은 질량이 왜 에너지계의 아이돌인지를 잘 보여준다.
여성 과학자로서 수많은 차별을 받아야 했던 에미 뇌터는 대칭이 있으면 그에 대응하는 보존법칙이 존재한다는 뇌터 정리를 내놓았다. 에너지보존법칙은 시간에 대한 대칭에서, 운동량보존법칙은 공간에 대한 대칭에서 기원한다는 것이다. 에너지와 운동량의 증(+)과 감(-)을 대칭의 관점으로 바라본 놀라운 발견이다.
이제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이론을 만들 때 대칭부터 고려한다고 한다. 필요하거나 반드시 있어야 하는 대칭의 목록을 만들고, 이러한 대칭에 부합하는 물리이론을 찾는 방식인데, 중력과 양자역학을 통일하려는 초끈이론이 정확히 이런 방식으로 연구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 에너지의 방향을 설명하는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가 증가와 감소의 대칭을 이루는 것이 아닌 증가의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래서 우리는 내일로 갈 수는 있어도, 어제로 갈 수는 없다. 시간의 화살은 엔트로피의 방향인 내일을 향해서만 내달리는 것이다.

미래에 미리 가 본 인공지능과 함께 현재를 산다는 것

“해밀턴역학에서는 작용량을 최소로 만들려는 ‘경향’이 물체의 운동을 결정한다. 그래서 이것을 ‘최소작용의 원리’라고 부른다. 이 원리가 작동하려면 가능한 모든 미래의 경로를 미리 내다보며 작용량을 계산해야 한다.” -89p

컴퓨터는 뉴턴역학 방식으로, 튜링기계에 따라 순차적인 작업리스트인 알고리즘에 따라 작동한다. 반면 인공지능은 뇌에 각기 다른 세기의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뉴런처럼 인공신경망을 구축하고 정해진 압력에 대해 원하는 출력이 나오도록 연결 세기를 조정한다. 이때 해밀턴의 최소작용의 원리가 적용된다.
이렇게 미래에 가능한 모든 미래의 경로에 미리 가서 집의 차이를 계산해 본 알파고는 이세돌을 이겼다. 앞으로 인류는 미래를 아는 존재인 인공지능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물리학자 김상욱은 과학이 단지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 혹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선입견 없이, 객관적이고 재현 가능한 물질적 증거에만 기초하여 결론을 내리는 태도 말이다.
동시에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물질적이고 객관적인 증거에 기초하지 않은 상상의 산물인 행복, 사랑에 가치를 부여하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자신이 만든 행복이라는 상상을 누리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이 우주보다 경이롭다고. 이는 결국 과학이 인간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말로 읽힌다.
인간은 복잡한 전자다. 그 인간들이 모인 세계는 우주처럼 암흑물질이 가득한 더 난해하고 고차원적인 방정식의 세계다. 늘 불확정성을 안고 가는 인간의 모습이 어쩌면 과학적 태도와 닮았다.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시행착오의 경험을 통해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결과를 향해 부단히 노력하는, 그런 태도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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