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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일곱 해의 마지막
작성자 김**
작성일 2020/10/02
조회수 28
시인들의 시인, 백석을 향한 오마주
[서평]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문학동네(2020년)

백석을 염두에 두고 썼을 것으로 보이는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로 시작하는 노천명의 시 ‘사슴’, “그까짓 1,000억 원은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하다”며 법정스님에게 길상사를 시주한 자야(子夜) 김영한, 100권 한정으로 판매된 백석 시집 <사슴>을 구하지 못해 직접 빌려 필사했다는 윤동주, <백석평전>을 쓰며 그의 삶, 시인으로서의 태도까지 백석을 닮아보려고 전전긍긍했다는 안도현. 이쯤 되면 우리 사회는 백석에 푹 빠졌고, 백석은 우리 문단의 거인이며, 그를 향한 오마주가 차고 넘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오마주가 더해졌다. 바로 그의 북한에서의 마지막 칠년의 저술 과정을 다룬 김연수의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이다.
백석은 그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고 했지만, 그를 따르고 존경하는 이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니 백석은 결코 가난하지도 쓸쓸하지도 않을 터다.

어쩔 수 없이 작동하는 이데올로기의 자기장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 고통받은 뒤에야 그게 최악의 선택임을 알게 되는 것. 죄가 벌을 부르는 게 아니라 벌이 죄를 만든다는 것.” -89p

남북 분단이라는 그 막다른 골목에서 백석은 왜 북을 선택했을까. 사상적 편향을 드러내지 않았던 백석의 선택은 그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고향’이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은 또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하나의 벌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것이 백석에게 최악으로 여겨졌을지, 죄처럼 그를 옭아맸을지는 단언할 순 없다.
백석이 북한에서 자유로운 창작의 나래를 펴지 못한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58년이 저물어 갈 때, 백석이 량강도 삼수군 관평리 독골이라는 산골에 배치된 것이 정치적 차원의 유배인지,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고 했던 시인의 자발적 선택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데올로기의 자기장에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상상은 김연수 작가가 그렇듯 자연스럽게 이를 유배로 인식할 뿐이다.
1996년 85세로 생을 마감한 백석을 굳이 정치적 탄압으로 숨졌다고 보는 것도 북한사회의 경직성에 기인하겠지만,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시바이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시바이(芝居, 연극, 속임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중략) 모두가 시바이를 하게 되면 그건 시바이가 아니라 현실이 되겠지. 새로운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31p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백석의 본명인 기행이다. 사회주의 체제로 빠르게 변모하는 북한에서 기행은 러시아문학을 번역하며 살아간다. 언어 속에 창작의 욕망을 감추고 문학적 감각은 유지하려는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실존은 주어진 환경과 조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주의 개조는 기행에게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슬픔을 모르는 인간, 고독할 겨를이 없는 인간으로 살아가길 강요한다. 그런 인간인 척 시바이(연극)를 하며 그것을 현실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획일적인 사회주의 인간형을 거부하고 그 현실과 맞설 것인가의 경계에 기행은 서 있다. 이는 곧 자신을 속이면서 글을 쓸 것인가, 아니면 암흑의 현실에 절필할 것인가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이념의 하중이 상대적으로 덜한 동시(童詩)를 쓰며 기행은 문학이 풍부한 사상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동문학 토론회에 불려가 자아비판을 당하고 결국 유배에 가까운 축산반 배치를 받고 오지 산골로 가게 된다.

작은 행복, 다채로운 빛이 사라져가는 현실 위에서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하나씩 없어지네요. 이 작은 행복조차도 가질 수 없는 땅이라니.” -74p

“그렇게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고, 현실은 그 무수한 세계가 결합된 곳이다. (중략) 이 모든 세계가 다채롭고도, 영롱하게 반짝이는 빛을 발하면 그것이 바로 완전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191~192p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들이 하나 둘 북한에서 사라져 갈 때 백석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채롭고 영롱한 빛을 잃어가는 현실을 목도하며 백석은 어떤 생각을 지우고 어떤 생각의 옷을 입었을까. 사랑이 있다면 미움이 있고, 즐거움과 괴로움이 한 몸으로 붙어 있듯이 세상 모든 것이 두 겹으로 이뤄진 것을 깨달았을 때, 눈앞의 현실은 오직 하나의 이념, 개인숭배에 경도될 때 백석은 어떤 삶의 여정을 설정할 수 있었을까. 말년의 백석이 선택한 침묵은 그에게 주어진 창작의 여백이 몹시 비좁았음을 방증한다.

“시대에 좌절할지언정 사람을 미워하지는 말라고. 운명에 불행해지고 병들더라도 스스로를 학대하지 말라고.” -172p

이상의 소설 실화<失花>는 “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로 시작한다. 백석은 아예 인생의 후반부가 안개 속  비밀이다. 그래서 더욱 풍요로워지는 작가가 아닐까.
분명한 역사적 궤적을 지닌 인물에 대한 상상의 글쓰기는 쉽지 않다. 객관적 사실에 기반해야 하고, 공백의 시간을 상상으로 메울 때도 철저히 현실적 개연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그런 면에서 김연수의 <일곱 해의 마지막>은 작가의 상상력이 작동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넓진 못했으리라. 여기에 이데올로기의 강한 자력 또한 견뎌내야 했을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된, 개인숭배의 글쓰기를 강요받으며 결국 절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합리적 추론을 전제로 글을 이어가다보면 출구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
러시아 작가를 통해 자신의 시작노트를 전달하지만, 결국 사라지고 마는 소설의 설정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부리며 감정을 제어하는 백석의 작품을 다시 만나진 못하리라는 암시로 읽혀 서글프다. 자신이 쓴 글을 난로에 태우는 백석의 모습은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멀리 번개에 의해 일어난 산불인 천불을 바라보고 있는 백석의 마지막 모습은 그렇게 자신의 문학적 재능이 까맣게 불타는 것을 스스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쓸쓸한 노년의 풍경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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