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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료일202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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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독서감상평

게시물 내용
책제목랩걸
작성자 곽**
작성일 2021/04/19
조회수 28
랩 걸.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2018년 12월, 그러니까 중학교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 나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일하기를 막연히 희망하게 되었다. 그런 내게 어머니께서 추천하신 책이 바로 식물학자 호프 자런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Lab Girl』이었다. 호프 자런은 식물을 연구하는 과학자이며, 대학에서 일하는 교수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며, 동시에 한 아이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책 속에서 자신이 지나온 삶과 자신의 다양한 면모를 풀어내었는데 나는 책을 읽으면서 마치 내가 그녀 삶의 한순간들을 함께 하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의 초반에 그녀는 마을의 유일한 과학자였던 아버지와 그의 실험실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호프 자런이 계산자를 가지고 실험대를 놀이터 삼아 놀던 어린 시절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까지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로 남아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린 날의 이 경험은 그녀가 과학자로 성장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또한 그녀의 천진난만함은 어엿한 한 사람의 성인이자 과학자가 된 이후에도 삶의 다양한 순간들에 녹아들어 있었다. 이를테면 독자들에게 그녀 전공인 식물에 관해 설명하는 순간이나, 연구비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동료들과 함께하는 수많은 발견의 순간들과 같은 때에, 나는 그녀의 어린 시절 모습을 겹쳐 볼 수 있었다.
호프 자런은 성장 중에 자신의 오빠들은 그들이 함께 실험실에서 했던 놀이를 실험실 '바깥세상'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 순간에 자신이 남자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녀는 아버지의 실험실로 숨어들었으며, 그동안 그녀가 단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살아 있는 여성 과학자가 되고자 하는 생각을 확실히 하게 되었다. 호프 자런은 책 속에서 '여성 과학자로서'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자신이 '살아있는 여성 과학자' 임을 자기 자신과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몇 번이고 각인시키고자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러한 부분을 읽으며 여성 과학자인 자신과 자신 손으로 직접 완성한 세 개의 자런 실험실에 대한 호프 자런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으며, 동시에 나 또한 그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녹색'이라는 단어는 '자란다'라는 동사와 어원을 함께한다."(p.400) 한데 이 말에서 벗어난 특별한 식물 하나가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바로 책의 나무와 옹이 파트에서 호프 자런이 언급하는 '부활초'라는 식물이다. 이 식물은 볼품없게 생긴 데다 작고 쓸모없지만, 누구보다도 특별하다. 부활초의 이파리들은 바삭바삭한 갈색으로 말라붙은 채, 몇 년 동안 죽은 척하다가 수분을 다시 받으면 기능을 되찾는다. 비가 오면 갈색 이파리들은 부풀어 올라 48시간 동안 그간 농축해 두었던 당을 먹으며 살아남는다. 이 작은 식물이 죽음의 시든 갈색을 뛰어넘어 다시 살아난 위업을 이룬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극적인 회생도 영원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부활초마저도 시들고 완전히 죽는 때가 온다고 한다. 그러나 이 스치듯 누리는 영광스러운 순간에 부활초는 다른 식물은 전혀 모르는, 초록이 아니면서도 성장을 하는 비밀을 누리는 것이다. 언젠가 절망과 낙담을 밟히고 시들어 갈색으로 변한 화초에 비유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 역시 갈색 이파리를 보면서 희망이라거나, 소생의 이미지를 떠올려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부활초'에 대해 알게 된 이상 그에 대한 내 생각은 이미 바뀌었을 것이며, 절망스러운 순간에 이 작은 식물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희망을 품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는 동안 호프 자런이 가진 것 중 가장 부럽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둘도 없는 친구이자 동료 빌의 존재이다. 삽을 들고 구덩이를 능숙하게 파며 한때 구덩이에서 살기도 했었다고 말하는 호프 자런의 동료 빌은 아르메니아 출신이다. 이름도 생소한 이 나라에 대해 검색한 나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이라는 사건을 알게 되었는데, 실제로 이 책의 후반부에 빌의 아버지가 학살 때에 가족을 모두 잃고, 자신은 우물 속에 숨어 살아남았다는 이야기가 언급되면서 책을 읽다 나 혼자 "그 사건이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지금 보면 빌이 땅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어려서부터 땅을 파고 들어가길 좋아했다는 사실이 이에 영향을 받아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에 대한 설명은 이쯤 하고, 둘의 관계를 보며 내가 느낀 점은 둘은 서로의 결핍을 충족시킨다는 것이다. 둘은 서로가 약한 부분에 강하다. 호프 자런이 불안해하고, 조바심을 느끼며 고민할 때에 빌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저 그녀를 한 번 툭 치고서 조언을 내뱉는다. 또한 빌이 무미건조한 말투로, 자신의 불확실한 앞날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 호프 자런은 함께 일하자고 손을 내민다. 나는 이 둘이 함께일 때 비로소 완전하다고 생각했다. 책에 나오는 모든 발견과 실험, 또 여러 사고의 순간에 둘은 함께이고 서로가 혼자가 아님을 일깨운다. 호프 자런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은 뒤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지만 빌은 이 모든 행복의 전제조건이다. 무어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관계도 아니며, 완벽하고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게도 저와 같은 관계가 생길까? 하는 막연한 물음을 던져본다. 어쩌면 지금 알고 지내는 친구 중 하나, 혹은 앞으로 새로이 만나게 될 누군가와 저 둘 이상의 유대감을 쌓는 일이 가능할까, 는 미지수지만 만약 그러한 사람이 생긴다면 나는 삶에서 얻을 수 있는 큰 행운 중 하나를 얻게 된 것이라 확신한다. 내가 호프 자런과 빌의 관계를 보며 둘은 서로에게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작 부분에서 본인을 '살아있는 여성 과학자'라 칭한 호프 자런은 책의 곳곳에 자신이 여성 과학자로서 겪은 일들에 관해 서술한다.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일했을 때, 호프 자런은 그녀의 임신 소식을 들은 총학으로부터 권고사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커피컵을 집어던진 그날 내 눈에는 앞으로 얻을 것보다 내가 잃고 있는 것만 보였기 때문에 울고 또 울었다. 내가 얻을 것은 두께 5cm가 넘은 자궁에 가려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p.308)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흔히 축복이라 칭해지지만, 호프 자런에게는 하나의 꼬리표가 붙었으며, 직장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이에 분노함과 동시에 아이가 자신에게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한다. 이 일화와 같이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 속에서 호프 자런이 여성 과학자이기에 부딪혔던 수많은 상황은 책의 말미에 결국 자신을 향한 긍정적인 목소리로 변모한다.
"나는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다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지만, 동시에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알고 있다. "널 사랑해"라는 말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지만 행동으로 어떻게 보여줄지는 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알고 있다."(p.397)
내가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이다. 그녀는 똑똑하다는 말과 단순하다는 말을 들었고, 여자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말과 여자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여성적이라는 꾸지람을 들었는가 하면 너무 남성적이어서 못 믿겠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호프 자런은 무시하는 법을 배웠다. 동시에 자신도 다른 사람들에게 충고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그저 자신의 일인 과학을 하기로 한 것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서인지, 실제로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호프 자런과 내가 닮은 점이 많다고 느꼈다. 나는 그녀와 같이 남의 말을 듣는 데에 익숙하지 않으며,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하기도 한다. 해서 나와 비슷한 생각,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였던 호프 자런이 그녀 평생에 들어왔던 말들과 상황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무시하고, 정리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리고 저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이 책을 다시 읽는 어느 날에는 내가 호프 자런과 같은 한 명의 어엿한 과학자로서, 그녀와 같이 내 삶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외하는 방법을 터득한 어른이 되어 있기를 바란다.
"과학은 어디에나 있다. 한밤의 실험실과 숲을 이룬 나무들, 나무의 꿈을 꾸는 씨앗과 꽃, 그리고 모든 발견의 순간에도!"
『Lab Girl』의 책 소개에 적힌 문구이다. 저 말이 맞다. 과학은 어디에나 있다. 이 책은‘과학 하기’라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려준다. 호프 자런은 과학이란 자연이 숨겨놓은 비밀을 풀어내는 것이라 정의하며,  그 깨달음의 순간에 느껴지는 흥분과 경외감에 관해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호프 자런의 연구실에서 함께 호흡하고 함께 기뻐하며 수많은 식물과 또 수많은 발견의 순간들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 복잡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우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과학'이라는 것의 매력에 말 그대로 흠뻑 젖은 것이다. 책을 읽기 전부터 '과학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책을 읽고 난 후 호프 자런과 같은 식물학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통해 그간 막연하게 생각하고만 있던 내 진로를 어느 정도 확립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녀가 느낀 것을 나 또한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탓이다. 호프 자런이 평생에 걸쳐 식물을 연구했음에도 그녀가 하와이로 연구실을 옮기면서야 비로소 야자나무가 사실 나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내었던 것처럼 세상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것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녀가 식물을 연구했듯이,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바이러스와. 항체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다. 당장은 이번 코로나 사태의 바이러스부터,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것들에 대해서. 또 호프 자런과 빌이 동위원소 측정을 둘의 커리어를 관통하는 하나의 목표로 삼았듯, 새로운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발견하는 일에 내가 한가지 역할이나마 수행한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그저 희망 사항이고... 앞으로 나는 '여성 과학자'(물론 남성 과학자들 역시)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내 주변의 수많은 변화와 그저 아무렇지 않게 넘겼던 작은 것들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쏟을 것이고, 의문이 드는 모든 것들에 질문을 던질 것이다. 그냥 그렇게 '살아있는 여성 과학자'가 되는 길에 한 걸음을 내디디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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